전통이 되살아난 한일 ‘종이의 길’…종이작가 사카모토 나오아키 씨
(사진) 기쁨을 말씀하시는 사카모토 나오아키 씨
(사진) 한국어판 “종이의 대륙”
가르침의 저작 한국어판도 간행
종이작가이자 화지전문점 ‘시호 나오’(도쿄 분쿄구) 대표, 사카모토 나오아키 씨가 저술한 ‘종이의 대륙’(2000년, 타이리쿠노 타이와샤)의 한국어판을 9월5일, 한국의 한지개발원이 출판했다(비매품). 동월 6일에는 출판을 기념하는 강연회가 강원도 원주시의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열려, ‘종이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본서에는 종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그의 뜨거운 생각이 저술됐다. 80년대에 사라기기 직전이었던 고치현 구 토와손의 토카와센카 종이, 그리고 한국의 전통종이인 ‘음양지’(한지)의 부활에 힘을 보탰다. ‘반도와 섬을 잇는 또 하나의 종이의 길’을 본 것 같았다는 사카모토 씨에게 들었다.
부자같은 음양지와 센카 종이
기법은 세계에 유일
이번에 한국어판 출판에 진력하신 분은 강원도 원주시의 이창복 한지개발원 이사장이다. 한지 제작을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기획했다고 한다.
사카모토 씨의 한지를 통한 한국과의 인연은 30년에 이르러, 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사카모토 씨가 처음으로 한국의 종이뜨기장을 방문한 것은 1985년이다. 교토에서 열린 ‘국제종이회의’(1983년)에서 알게 된 한지연구가인 고 김영연 씨가 안내해주었다. 김 씨는 사카모토 씨에게 ‘한지에 문호를 개방해주었다.’ 당시 대부분의 종이뜨기장에서는 일본수출용으로 일본식으로 종이를 떴다. 이 상황은 지금 원주도 다를 바 없다.
한지의 산지로 알려진 원주시는 1999년부터 해마다 ‘한지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원주 사람들은 무엇이 진짜 한지인지를 모른다.’ 예전에 이 이자상이 사카모토 씨 가게를 찾아왔을 때 ‘종이의 대륙’을 선물했다. 수개월 후 이 이사장으로부터 ‘번역해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이자장님들이 앞으로의 한지에 대해서나, 전통적인 것을 이어받아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색하는 중, 이 책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27세 때 ‘시호 나오’를 설립했다. 17세에서 10년간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대학교 재학중에 쓰키지의 어시장에서 사회를 배웠다. ‘매일 돈을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욕망이 무엇이고 손으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깨달았다. 그 후 자신의 손재주를 살린 일을 하고 싶어서 인쇄 세계에 들어갔다. 거기서 종이의 질에 대한 고집이 생겨 수작업으로 뜨는 종이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갔다.
30년 전에 전국 각지의 종이뜨기장을 돌아봤다. 고치현 하타군 토와손을 찾았을 때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마지막에 한번만이라고 15년 정도 전에 뜬 토카와센카 종이를 창고에서 꺼내왔다. 그것을 봤을 때 ‘종이는 평화롭다고 느꼈다.’
‘그 사람들의 삶, 사는 방법, 그렇게 소박할 수 없더라고요. 저는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파묻혀버린 종이가 있으면 마음이 끌려요. 지금 일본에는 절대로 없는 종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그 종이를 떠달라고 한 거죠.
그 존재를 전하는 사명
음양지와 만나게 되기 전에, 그를 한지의 길로 이끌어준 김영연 씨가 돌아가셨다. 그 때부터 다시 한국을 방문할 때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경기도 가평의 장지방을 찾아 장용훈 씨에게 그의 마음을 전했다. 소멸직전이었던 음양지가 다시 살아났다. 그 때 음양지의 뜨기 방법이 센카 종이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쪽 따 닥을 원료로 하고, 두 장으로 한 장을 만든 종이이다. 세계에서 음양지와 센카 종이 이외에 없다고 한다.
센카 종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 히데요시를 적대하는 측에 있었던 무사 효도센카(兵頭泉貨)가 히데요시에게 패배한 후 스님이 되어, 현재의 에히메현 노무라초에서 뜨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센카 종이의 기원은 조선에 출병했던 히데요시의 시대. 그것만으로도 영향을 안 받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음양지라는 말은 종이를 뜨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센카 종이와 음양지는 부자지관계이다.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저 자신의 사명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2가지의 종이를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일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수작업으로 뜨는 종이를 이어온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그 역시 후대에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